전기가 없어도 음식을 차갑게 보관할 수 있을까?
냉장고는 현대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가전제품 중 하나다. 하지만 지구촌 곳곳에서는 아직도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거나, 냉장고 사용이 어려운 지역이 존재한다.또는 에너지 절약을 위한 선택으로, 전기 없이도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 기술이 있다. 제로에너지 보관 기술이다. 전기가 없어도 흙, 물, 그늘, 공기의 흐름만으로도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 그중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자이나 쿨러’(Zeer Pot)와 ‘냉풍구’다.
흙과 물만으로 냉장을? ‘자이나 쿨러’의 원리
‘자이나 쿨러(Zeer Pot)’는 아프리카, 인도, 중동 등 더운 지역에서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전기 없는 냉장 장치다.
기술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다.
- 크기가 다른 두 개의 흙 항아리를 준비한다.
- 작은 항아리를 큰 항아리 안에 넣고,
- 두 항아리 사이 공간에 모래를 채운 후 물을 붓는다.
- 전체를 젖은 천으로 덮어 그늘에 둔다.
이 구조는 증발 냉각 원리를 활용한다. 모래의 물이 증발하면서 주위 열을 흡수하고, 내부 온도를 낮추는 방식이다.
실제로 이 장치를 사용할 경우 내부 온도는 외부보다 10~15도 낮아질 수 있고, 야채, 우유, 약품 등을 며칠간 보관할 수 있다. 현지에서는 고온 지역 소상인, 농부, 약국 등에서 사용되며, 소비 전력 0, 유지비 0, 설치비도 저렴하다는 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적정기술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에는? 전통 지혜 ‘냉풍구’에 주목하자
놀랍게도 비슷한 원리는 우리 조상들의 전통 건축에도 있었다. 바로 산속, 또는 지하에서 찬 바람이 불어 나오는 자연 구멍을 이용한 ‘냉풍구’다. 한국에서는 일부 지역에 얼음골과 같은 냉풍 동굴, 냉풍 샘(천) 등이 존재하며, 여름철에도 내부 온도가 5~10도 사이를 유지한다.
* 현재 남아있는 한국의 냉풍지형은 경남 밀양 얼음골, 의령 얼음골, 강원 영월 얼음골 그리고 충북 단양 냉풍욕장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냉풍구 인근에 석빙고를 지어 얼음을 저장하거나, 음식을 보관했다. 최근에는 이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지열 이용 저에너지 저장고도 등장하고 있다. 지하의 일정한 온도를 활용해 채소 저장고, 와인 저장고, 자연식 창고 등으로 활용되며, 도시에서는 텃밭용 이동형 냉장 보관함으로도 개발되고 있다. 즉, 냉풍구는 우리 한국형 제로에너지 냉장 기술의 원형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하지만 위대한 과학, 적정기술의 진짜 힘
이러한 제로에너지 냉장 기술은 단순히 ‘없는 것을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자원을 최소한으로 활용해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는 고효율 솔루션이라 할 수 있다.
자이나 쿨러와 냉풍구 모두
- 재료가 구하기 쉽고,
- 누구나 만들 수 있으며,
-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지속가능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장의 문제를 그대로 바라보고, 거창한 기술보다 환경에 맞는 해법을 찾으려는 태도 자체가 적정기술의 핵심이다. 그리고 오늘날 탄소중립, 에너지 절약, 자원 재활용의 시대에서 이러한 기술은 저개발국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에도 꼭 필요한 아이디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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